2008년, 걸그룹 쥬얼리에 새 멤버로 합류하자마자 ‘One More Time’으로 가요계를 휩쓸며 8주 연속 음악방송 1위를 기록했다.
바쁜 스케줄에 헬기를 타고 이동할 정도였다. 누군가는 꿈도 꾸지 못할 그 시절, 그 찬란한 중심엔 하주연이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팀의 중심축이었던 박정아와 서인영이 떠난 뒤, 쥬얼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 멤버를 영입해 재기를 노렸지만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결국 2015년, 쥬얼리는 해체됐다.
하주연에게 남은 건, 공허한 무대와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소속사도 떠나야 했다.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고, 설 무대도 점점 사라졌다.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음악학원 랩 강사, 카페 계산원까지…
생계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음악을 놓진 않았다. 2년 동안 랩을 쓰고 연습했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 포기한 적은 없었다. 결국 하주연은 용기를 내 Mnet ‘쇼미더머니5’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성 래퍼는 대부분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가는 분위기였지만, 가릴 여유조차 없었다.
설 무대를 찾아 나선 거였다.
결과는 1차 예선 탈락. 긴장과 압박 속에서 랩을 하다 가사를 잊는 실수가 나왔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울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걸 쏟아냈다.
“잘 나갈 때 에브리바디 콜 미, 못 나가니 돈 노 바디 콜 미.”
잊혀진 이름이 되어가는 자신을 향한 냉정한 고백이자,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쥬얼리로 함께 활동했던 멤버들, 그리고 연습생 시절부터 알던 광희 역시 그의 도전에 깜짝 놀랐다.
“대단하다”, “진짜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는 말들이 돌아왔지만, 하주연의 속은 무겁기만 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쇼미더머니’ 이후에도 아르바이트 생활은 계속됐다.
구직 사이트에 200군데 넘게 이력서를 냈고, 겨우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 한 카페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월 수입은 100만 원 남짓. 그래도 집에 손 벌리진 않았다.
“서른이 넘은 내가, 부모님께 의지하는 건 부끄럽다”는 말이 하주연의 현실이었다.
이후 하주연은 주방용품을 다루는 영업회사에 취직했다. 숟가락과 포크, 커트러리 세트를 판매하는 일이었고, 벌써 3년째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방송 일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지만, 당장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제2의 삶”을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대가 그립다.
마이크를 잡고 랩을 할 때 느끼던 감정은 어디에서도 대체되지 않는다.
“디스를 못 해서 랩이 약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나는 무대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여전히 내 안에는 음악이 있다”고 털어놓은 그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한번 랩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
하주연은 지금도 꾸준히 랩 가사를 쓰고 있다. 시간이 나면 연습실을 찾아 연습을 하고,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날을 꿈꾼다.
최근 박정아의 결혼식에 참석해, 전 쥬얼리 멤버들과 함께 축가를 부르며 잠시 과거의 무대 감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무대는 사라졌지만, 음악을 향한 마음만큼은 꺼지지 않았다.
그 시절 헬기 타고 다니던 아이돌이 지금은 영업직 회사원이 되어 살고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하주연의 새로운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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