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정은 원래 배우의 길을 꿈꾸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피리를 전공한, 말 그대로 ‘엘리트 국악인’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눈에 띄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무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국악기의 음색보다 사람의 대사와 몸짓에서 오는 힘이 훨씬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졸업 후에도 그녀는 음악인의 길을 갈 수 있었다.
관현악단에 들어가면 안정적인 삶이 보장됐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답답했다.
“아침마다 단정히 악기를 들고 출근하는 모습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는 그녀의 말처럼, 음악보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한 갈증이 있었다.
답답함을 떨치고 싶어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무작정 한 극단의 문을 두드렸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하며 포스터를 붙이고, 무대 뒤를 정리하던 시절. 바로 그곳에서 설경구를 만났다.
당시 연극계에서 묵묵히 내공을 쌓던 설경구는 황석정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연기를 해야 한다.”
이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처음엔 “제가요?”라며 웃어넘겼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결국 황석정은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입학해 연기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그녀는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했다.
특히 영화 황해에서는 단 몇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드라마 미생에서는 재무부장 역할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박혔다.
외모 중심의 시선이 여전히 강한 한국 연예계에서 그녀는 주눅들지 않았다.
“여배우는 예뻐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는 말로 업계의 고정관념을 지적하며, 개성 있는 연기와 진솔한 태도로 자신만의 자리를 지켰다.
연기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그녀는 빛났다.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털털하고 꾸밈없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호감을 샀고, 복면가왕에서는 ‘쑥떡’으로 등장해 파워풀한 가창력을 뽐내며 숨겨둔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로, 방송인으로, 그의 활동 반경은 점점 넓어졌다.
황석정의 인생은 결국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설경구의 “너는 꼭 연기를 해야 한다”는 말. 하지만 그것을 진짜 길로 만든 건 그녀의 선택과 노력이다.
안정적인 길을 뒤로하고 다시 시험을 보고,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며, 결국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는 배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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