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라디오 ‘별밤’ 노래 콘테스트에서 1등을 차지한 한 여학생이 있었다.
음악에 특별한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맑고 탄탄한 보컬은 단숨에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 무대를 본 이문세는 그녀에게 가수 제안을 건넸고, 그 소식은 곧 SM엔터테인먼트 창립자 이수만의 귀에도 들어간다.
당시 이수만은 새로운 걸그룹 S.E.S.의 멤버를 찾고 있었고, 그녀를 ‘4번째 멤버’로 염두에 두고 직접 미국 LA에 거주하던 집까지 찾아간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김혜원. 예명으로는 ‘해이’다.
하지만 해이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부끄러워했고, 정중히 제안을 고사한다.
음악보다는 학업이 우선이었고, 낯가림도 심했다. 결국 S.E.S.는 세 명의 멤버로 데뷔하게 된다.
해이가 제안을 고사하자, 옆에 있던 동생 소이가 자연스럽게 이수만의 눈에 들어온다.
당시 소이는 VJ 활동을 하며 밝고 활달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중국어도 능숙하게 구사했다. 끼도, 표현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이수만은 소이에게 연습생 제안을 했고, 소이는 한국행을 결심한다.
낮엔 학원, 밤엔 트레이닝을 반복하며 연습생 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그녀도 데뷔 직전 학업을 이유로 팀에서 빠진다.
고려대 중문학과에 진학하며 새로운 진로를 택한 것.
놀랍게도 소이는 대학 입학 이후 우연히 참가한 오디션에서 다시 한번 데뷔 기회를 잡게 된다.
그렇게 1999년, 걸그룹 ‘티티마’의 멤버로 정식 데뷔하며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다.
이후 소이는 배우 활동까지 겸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갔고, 지금은 1인 밴드 ‘라즈베리필드’를 통해 음악과 연기를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 방송에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학업 대신 S.E.S. 데뷔를 선택하겠다고 속내를 내비치기도.
S.E.S. 연습생 생활을 오래한 탓에 S.E.S. 멤버들과도 친분을 유지중이다.
그 중에서도 유진과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동생보다 늦었지만, 해이 역시 음악을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연세대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우연히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통역으로 출연하게 됐고, 그 자리에서 ‘Part of Your World’를 부르며 무대에 선다.
그 무대를 본 이문세의 추천으로 본격 데뷔가 결정됐고, 2001년 ‘Je T’aime(쥬뗌므)’를 발표하며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노래는 이후 조이와 오마이걸이 리메이크할 만큼 여전히 사랑받는 곡으로 남았다.
해이는 이후 가수 조규찬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학업에 집중했고, 2018년엔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지금은 미국 케네소 주립대에서 영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문학, K-POP, 대중문화까지 폭넓은 주제로 강의하며 ‘가수에서 교수’로, 이례적인 전환을 이뤄냈다.
한 인터뷰에서 해이는 “그 시절 이수만 선생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하고 묘한 기억”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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