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전국을 강타한 유행어가 있었다. 바로 개그맨 정철규가 만든 “사장님 나빠요~”
외국인 노동자 블랑카의 말투를 흉내 낸 이 한마디는 초등학생들까지 따라 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고, 정철규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정식 공채도 아니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출연하는 KBS ‘한반도 유머 총집합’에 출연해 보여준 블랑카 캐릭터 하나로, 그는 KBS 특채 개그맨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KBS 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으며, 방송계가 주목하는 신예로 떠올랐다.
하지만 반짝이었던 스타덤은 오래가지 않았다.
블랑카의 성공은 강렬했지만, 그만큼 이미지의 틀도 컸다.
이후 다른 캐릭터에 도전했지만 반응은 미미했고, 외국인 역 외에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영화 <상사부일체>, 드라마 <도망자 플랜B>에서도 그는 또다시 ‘외국인 노동자’ 역할로 등장했다.
소속사와의 분쟁까지 겹치면서 방송 일도 끊겼다. 그렇게 4년 가까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수면제와 우울증 약에 의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느 날엔 약을 먹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운전 중이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건 봉사활동이었다.
개그 동기인 안상태, 황영진의 권유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뭘 도울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는 이후 다문화 이해교육 전문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광명시 다문화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진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갔다.
지금은 전국을 돌며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에는 tvN <문제적 남자>에 출연해 멘사 회원 인증 소식을 전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IQ 172 이상만 가입 가능한 하이 아이큐 소사이어티 CIVIQ 회원으로 등록된 그는, 국내 멘사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블랑카로만 기억되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강사이자 지적인 방송인으로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준 셈이다.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 <저널리스트>에 한국인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한 것.
한국인과 사랑에 빠진 우즈베키스탄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정철규는 처음으로 ‘한국인’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드라마는 시청률 39%를 기록하며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정철규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저를 다니엘 헤니처럼 봐준다”며 웃어보였다.
전성기에도 받지 못했던 ‘주인공’의 자리를, 해외에서 드디어 경험하게 된 셈이다.
정철규는 2015년 결혼해 지금은 반려견과 함께 펫팸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 초기에 자연 임신이 되었지만 유산을 겪었고, 이후 여섯 번의 시험관 시술도 실패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부부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삶을 선택했다.
결혼 이후 개그 동기들과의 관계도 회복하며 방송과 강연을 병행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전성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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