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귀공자 배우였는데.. 165억 유산 탕진하고 청소 일하면서 원룸 사는 배우


1980년대, 브라운관을 장악한 잘생긴 신예 배우가 있었다.

MBC 12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임영규.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TV 스타로 자리 잡은 임영규는 준수한 외모, 안정된 연기력에 더해, 강남 빌딩을 상속받은 ‘금수저’ 배우로도 유명했다.

결혼한 이는 당시 떠오르던 배우 견미리였다. 두 사람은 화려한 커리어 못지않게 남다른 배경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993년,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두 사람은 이혼했다.

두 딸을 남겨두고 헤어진 이혼의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고통도 있었고, 이후 임영규는 연예계를 떠났다.

이혼 이후 임영규는 아버지가 물려준 강남 건물을 포함해 당시 시세로 약 165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상속받는다.

1990년대 기준, 이 금액은 지금의 600억 원에 가까운 가치였다. 그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초호화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왕의 생활’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 실패와 사치, 도박, 무절제한 소비가 겹치며 재산은 빠르게 바닥을 드러냈다.

단 2년 6개월 만에 전 재산을 탕진한 그는 결국 빈털터리로 한국에 돌아오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영규를 기다리고 있던 건 냉혹한 현실뿐이었다. 아파트 전세금이 마지막 남은 돈이었다.

형제들에게 손을 벌리고, 빌린 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지만 결과는 또 실패였다.

전세금마저 날린 그는 고시원에서 새우잠을 자다, 결국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가야 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전도사의 도움으로 겨우 지낼 곳을 찾았다.

교회에서 청소 일을 하며, 건물주의 배려로 반값에 얻은 5평짜리 원룸이 지금의 보금자리가 됐다.

5000평 미국 저택에서 살던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지금이 더 좋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잃은 임영규는 점점 술에 의존하게 됐다.

“소주 한 병을 마시니 잠이 왔다. 그러다 두 병, 세 병으로 늘었다.”

알코올성 치매까지 겪었고, 자고 일어나면 파출소에 있는 일이 반복됐다.

수차례 폭행과 주취 소란, 무전취식으로 처벌을 받았고, 최근엔 영업방해 혐의로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전과만 9범. 하지만 그는 다시 술을 끊었고, 조금씩 삶의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2020년 9월부터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활동 중이다.

여전히 원룸에서 지내며 검소한 삶을 살고 있지만, 삶을 바라보는 눈은 예전과 다르다.

“이젠 진짜 숨을 쉬며 사는 것 같다”는 말처럼, 그는 지나온 인생을 자양분 삼아 조용히 자신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