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이름 순서로 앞뒤에 앉게 된 인연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가수 박기영과 배우 박은혜 이야기다.
인천 인성여자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성격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지만,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박은혜, 활달하고 노래 잘하는 박기영.
겉보기에는 쉽게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지만,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우정을 키워왔다.
‘박씨’라는 같은 성까지도 묘하게 하나의 유대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박은혜는 친구의 노래 실력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K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형중의 가위바위보’에 한 통의 엽서를 보냈다.
‘친구가 노래를 정말 잘합니다. 꼭 한번 들어봐 주세요.’
거기엔 박기영의 이름을 넣은 국민교육헌장 패러디도 담겨 있었다.
그 사연이 뽑혔다. 박기영은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예선을 통과해 연말 결선까지 올라가 장원까지 차지했다.
이후 여러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고, 박기영은 그렇게 1998년 1집 앨범으로 데뷔하게 됐다.
그 앨범엔 또 하나의 반가운 이름이 있었다. ‘후회’라는 수록곡의 작사가로 박은혜가 참여한 것.
대학에서 광고 창작을 전공하며 글을 쓰고 있던 시기, 박기영의 부탁으로 쓴 가사가 앨범에 실렸다.
박기영은 소속사 대표에게 박은혜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가수와 작사가, 그렇게 고등학교 단짝 친구는 동시에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늘 특별했다.
박기영이 소속사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박은혜는 묵묵히 옆을 지켰다.
박기영의 6집 앨범 쇼케이스에도 직접 참석해 응원을 아끼지 않았고, 방송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소개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후 함께 출연한 프로그램에서는 고교 시절의 에피소드가 공개되기도 했다.
시험지를 넘기다 처음 본 박은혜의 얼굴을 “살면서 본 사람 중 제일 예뻤다”고 말한 박기영, 그리고 그런 박기영을 “학교에서 노래 잘하는 유명인”으로 기억하는 박은혜.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친구를 자랑스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박은혜는 연기 활동 외에도 중화권에서 인기를 얻고, 의류 브랜드 론칭까지 성공시켰고, 박기영은 재즈 유학과 다양한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함께 방송에 나오는 일이 드물다 보니 종종 아쉬움을 표현하지만, 긴 시간 쌓아온 신뢰는 어떤 무대보다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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