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신인 연기자 이휘향은 막 데뷔작 ‘수사반장’에 출연하며 주목받고 있었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다진 뒤, 공채 탤런트로 발탁된 이휘향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이었다.
한편, 포항에서는 ‘밤의 황태자’로 불리던 김두조가 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우연히 포항 촬영장에서 마주친 이휘향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며칠을 방송국 앞에서 기다렸고, 지인을 통해 어렵게 그녀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1983년 결혼을 발표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무려 19살의 나이 차이, 조폭 출신이라는 배경까지 더해져 주위의 우려도 컸지만, 이휘향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혼 이후 김두조는 모든 과거를 정리했다. 유흥업과의 인연을 끊고 체육관과 헬스장을 운영하며 새 삶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넉넉한 삶은 아니었다. 결혼 초 바닷가 텐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외동아들 김도현을 낳은 후에도 고생은 이어졌다.
이휘향은 서울에서 연기 활동을, 김두조는 포항에서 사업을 이어가며 오랜 시간 주말 부부로 지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김두조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트로트에 담았다. ‘주말부부’, ‘산다는 게 꿈이라네’ 같은 노래를 직접 쓰고 불렀고,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사·작곡은 물론,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며 세계 챔피언을 배출했고, 경호무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경북본부 회장을 맡기도 했다.
봉사 활동도 이어갔다.
교정시설에서 위로 공연을 열고, 성모자애원 등에서 봉사를 하며 수십 년간 조용한 선행을 실천했다.
2001년엔 수십 년 모은 유물과 시가 4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05년, 김두조는 잦은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다섯 달간의 투병 끝에 9월 30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도 자신을 드러내는 걸 원치 않았던 그는, “죽음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고, 지인들에게도 뒷날이 되어서야 소식이 전해졌다.
49재까지 해인사에서 산사 생활을 하며 남편의 마지막을 지킨 이휘향은, 그를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라 회상했다.
연기 외에는 말이 적었던 김두조는 살아 있을 때도, 떠나는 순간에도 묵묵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외동아들이 있었다.
병중에도 이휘향의 영화 데뷔를 응원하며 촬영장까지 직접 찾아갔던 김두조는, 결국 아내의 첫 스크린 데뷔작 개봉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한때는 밤을 지배했던 사람이, 19살 연하 아내를 만나 삶을 바꿨다. 헌신과 순애보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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