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모델계를 뜨겁게 달구던 이름 중 하나였던 안계범.
큰 키와 이국적인 외모로 국내 주요 디자이너들을 매료시켰고, 모델상까지 거머쥐며 주목받았다.
이후 예능과 영화계로 활동 반경을 넓혔고, 배우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활동을 멈추게 됐다. 원인은 뇌 염증.
병원에서도 정확한 병명을 적지 못했을 만큼 희귀한 경우였다.
말도 못 하고, 앉지도 걷지도 못했던 시절.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있던 시간이 한 달을 넘겼고, 이후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후유증이 남았다.
이 모든 과정을 버텨낸 뒤, 지금은 가사와 요리에 능한 가장이자, 다시 트로트 무대를 꿈꾸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Mnet <프로듀스 48>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던 연습생 안예원.
175cm의 큰 키와 안정적인 실력으로 주목받았지만, 편집과 분량의 벽은 높았다.
F클래스로 시작해 연습에 매진했고, 야부키 나코 등 동갑내기들과도 돈독한 사이를 쌓았다.
그룹 배틀 평가 무대에선 센터 선정을 둘러싼 알력 다툼의 피해자였고, 무대에선 존재감이 드러나지 못했다.
결국 86위로 방출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지만, 남은 건 포기하지 않았던 자세와 성실한 태도였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 하나. 이 연습생의 아버지가 바로 안계범이었다.
딸의 도전을 응원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방송국에서는 큰 키 때문에 앵글이 안 맞는다며 불리하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험 삼아 나가보라”고 했던 무대에서, 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어릴 적, 병상에 누워 있던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은 예원에게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병원에 함께 갈 수 없어 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 울고 떼썼던 그때.
이제는 그 시간들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아버지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지만, 딸은 “엄마 아빠의 뒷모습이 여전히 기억난다”고 말하며 담담히 그 시절을 꺼낸다.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다시 함께 웃을 수 있게 된 지금. 부녀는 일상 속에서 작고 확실한 행복을 쌓아가고 있다.
두통이 시작되면 2~3시간 전 기억이 하얗게 지워진다.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는 단기 기억 상실증.
그래서 하루의 일과를 메모하고, 가사도 반복해 적으며, 지금의 자신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가끔은 가족들의 얼굴이나 이름도 희미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지우지 않기 위해.
딸과의 추억, 가족의 대화, 집 안을 가득 채운 메모들.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만큼은 남는다는 걸 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안예원 sns